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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DongHyun
Subject   김동현 전시평론-이선영(미술평론가)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

이선영(미술평론가)

어디선가 모아온 온갖 잡동사니로 이루어진 김동현의 작품들은 그녀의 핸드폰 연결음인 ‘어디선가~누군가에~무슨 일이 생기면~’으로 시작되는 옛 만화영화의 주제가를 닮았다. 작업실과 전시장은 통상적인 의미의 그림이나 조각보다는 괴짜 과학자가 만든 듯한 기이한 발명품들로 가득하다. 여기에서 작가와 괴짜 과학자가 만나는 지점은 그들이 사회로부터 주변화 되고 배제된 ‘저주받은’ 존재라는 것이며, 그들의 결과물이 끝없는 호기심으로부터 발원한 것들이라는 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한 주체조차도 따돌리는 제어할 수 없는 자가 증식성이다. 김동현은 오토포이 박사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다. 오토포이 박사는 어느 모로 보나 작가 스스로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요즘 미술계에는 박사가 많지만. 오토포이 박사는 박사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구사하고 있는 언어의 이질성으로 인해, 주류에 편입되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나 포기로부터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점에서 그의 계산은 탁월하다. 김동현의 작품에서 이질적인 언어들의 충돌로부터 발생하는 에너지는 불가능해 보이는 다양한 조합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오토포이 박사만큼이나 엉뚱한 데가 있는 작가는 10년 가까이 해왔던 검도 그리고 요즘 빠져들고 있는 서핑보드 등과 관련된 특이한 재료들이 작품 속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주로 사용하는 장난감들도 대부분 수집된 것들, 또는 유행이 지나 판매가 종료된 협찬품들이라서, 작품들은 SF적인 발상에도 불구하고 고풍스러운 기운마저 풍긴다. 긴 시간대와 있음직한 허구를 다루는 공상과학은 늘 상 신화적 분위기와 연결되곤 한다. 우주 생명체들 간의 서로 다른 언어를 번역해주는 작품 [바벨 피쉬]에 나타나듯, 다름은 분열보다는 연결을 지향한다. 괴짜들은 늘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오토포이 박사를 상상해서 그려보라는 관객참여 프로그램은 전시회 때마다 성과를 거두어왔다. 누가 언제 왜 발행한지 알 수 없는 신문 [monster park]에 의하면, 오토포이 박사는 정부가 은폐하고 싶어 하는 괴 생명체에 대한 연구를 강행함으로서, 숨어 다니며 연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해부도와 설계도, 그리고 낯선 기구들로 가득한 전시장은 오토포이 박사의 실험실처럼 꾸며진다. 그것들은 가히 혼돈 속에서 질서가 태어남을 알려준다.
‘EVE(eternal vital energy) project’로 이름 붙여진 이번 전시의 작품에는 우주를 떠도는 배 모양의 우주선, 또는 우주전함인 [노아의 방주]가 포함되어 있다. 피할 수 없는 총체적 재난으로부터 탈주를 꾀하는 노아의 방주는 불확실한 우주의 대양을 항해한다. 석촌 호수를 마주한 전시장 안팎을 모두 활용한 작품 설치는 공간 그 자체를 물을 향하는 배처럼 보이게 한다. 전시장 바닥은 소우주와 대우주가 교차하는 대규모 우주 도시의 풍경이 연출된다. 기이한 우주 풍경은 오토포이 박사의 부하인 우주 탐사 로봇 Zero가 머나 먼 우주에서 전송해온 자료들로 설정되어 있다. ‘eve project’가 내세우고 지향하는 가치는 ‘생명체의 지속가능성, 인간과 자연환경, 정신과 사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긴밀하게 네트워크화 되어 있는지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오토포이 박사의 ‘생명 에너지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에 대한 연구’의 연속선상에 있다. 작품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의 이질성과 간극들이 크기에, 연결망이라는 주제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김동현의 작품에서는 차이가 연결을 추동한다.
종합이라기보다는 조합의 산물들은 괴물적 양상을 가진다. 오토포이는 생물학적 용어인 자가 생성(self creation)의 의미를 가지는 ‘autopoiesis’로부터 온 것으로, 인공지능이나 사회과학에서도 사용된다. 자연과학에서 나온 이 개념은 인문학과 사회학을 두루 아우르며, 끊임없이 생성하며 변화하는 생명을 지향하는 예술작품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의미의 층을 두텁게 한다. 김동현의 작품은 생산력의 진보를 위해서 언어를 통일 시켜왔던 전통 과학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과학이라면, 예외의 과학(pataphisics)일 것이다. 파타피직스는 말 그대로 ‘형이상학적인 과학’으로 객관적 증명이 필요 없다. 그것은 재현이 아니라, 제시만 하면 된다. 공상적 유희에 가까운 파타피직스의 매력과 위력은 세상 자체가 부조리 한 것에서 온다. 작가는 부조리의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놀이를 통해 부조리의 생산자의 입장에 선다. 혼돈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한술 더 뜨기 전략을 통해 분열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명확한 의도가 아니라 의식의 흐름에 따르는 김동현의 작품은 잡다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낸 조화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소통에 방점이 찍혀있다. 버려지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 어디서 어떻게 잘려 나온 지 알 수 없는 단편들은 현실과 의식의 차원에서는 잊혀져 있었지만, 이제 다시 맥락을 부여받고 또 다른 전체로 재조직된다. 꼴라주라는 형식적 장치를 통해 다양한 단편들이 만나는 공간을 마련한다. 입체파 이후의 현대미술에서, 이러한 단편들은 난해함과 무의미의 경계에서 출몰해왔다. 김동현의 작품은 원래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과제와 관련된 난해함보다는, 무의미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의미를 선호한다. 오토포이 박사의 캐릭터는 ‘우주의 다채로운 에너지를 조합하여 우주도시를 건설’하는 ‘에너지 조합의 연금술사’로 간주된다. 평면이든 입체이든 빈틈없이 빼곡이 들어찬 구성요소들은 ‘존재의 대연쇄’같은 신학적 관념을 넘어 공간에 대한 강박관념까지도 드러내는 듯하다.
불필요한 잉여라고는 없는 자연에는 빈 공간이 없다. 그러나 고대 원자론자들이 예시했듯이, 비어있음이 없다면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김동현의 작품은 단선적인 인과 고리가 아닌, 예기치 못한 연결망과 불연속적인 도약으로 끝없는 흐름을 창출한다. 작가가 즉흥적으로 구사하는 이질적이고 복합적인 언어들은 난해하고 비현실적인 듯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 오토포이 박사의 심오한(?) 정신세계와 별도로, 작품의 재료가 유행지난 장난감이나 버려진 나무 조각 등, 재료의 선택과 조합의 방식이 유희적이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내용이 ‘세상이 돌아가는 보편적인 원리’와 ‘근본적인 이야기’임을 강조한다. 김동현의 상징적 우주를 이루는 입자는 다채롭다. 입자들의 조합은 생물학이나 물리학으로부터 사회학이나 정치학에 이르는 풍부한 은유를 만들어낸다. 자연과 사회의 근접성은 김동현의 작품들을 필립 볼이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임계질량에서 이어지는 사건들]에서 언급한 현대과학의 ‘3C’ 이론과 맞춰볼 수 있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1970년대에는 르네 통이 정립했던 지질학의 격변설(catastrophe theory)을 이용하면 사회에서 나타나는 작은 효과가 어떻게 갑작스러운 변화로 이어지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특히 그것은 기이한 연결고리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반응하는  김동현의 부조작품에서 많이 발견된다. 1980년대의 혼돈 이론(chaos theory)은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력학적 계의 경우에 초기 조건을 자세히 알더라도 정확한 예측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이제는 복잡성(complexity)의 시대이다. 복잡성 이론에서는 창발(emergence)과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가 중요하다. 복잡성 과학은 집단적 거동에 대한 과학으로, 물질을 구성하는 무감각한 입자들의 거시적 성질들이 많은 사람들의 거동과 닮았음을 찾아낸다. 복잡성 이론의 창발적 성질은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사회와 과학이 갈라지는 지점도 있다. 필립 볼에 의하면 사회학자들은 사물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물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결정은 공개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만 한다. 더 이상 과학적 의문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과 달리, 자연과학은 원인과 목적에 대해 괄호를 침으로서, 세계에 대한 태도는 보다 단순하며, 그로부터 비롯된 낙관성과 긍정성은  나름의 생산성을 담보해주었다. 그러한 이해를 통해서 지식인들이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방식이 아니라, 사물이 그래야 하는 방식에 맞는 사회의 구조를 찾을 수 있다. 과학은 처방이 아니라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한 이해를 통해서 더 명백한 비전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다. 과학자의 비전을 가진 오토포이 박사의 작업은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이다. 세상의 많은 지식을 활용하면서도 소박하다. 그의 어법은 어눌하면서도 과감하다. 그의 계획은 야심차지만 타자를 지배하려는 권력에의 의지와 무관하다. 풍자적이지만 비관적이지 않다. 역설에 주목하면서도 생산적이다. 그는 과대망상에 빠져들곤 하지만 무기력한 몽상가가 아니라 활기차게 행동한다.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류로부터 더 많이 배워나간다.
작품의 중추를 이루는 자연은 그 외관이 아니라, 구조와 진화이다. 김동현의 작품을 이루는 구성요소들은 매우 인공적이다. 원재료로부터 비롯된, 아이들 장난감을 특징짓는 화려한 색채는 튀는 색의 향연으로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그림에도 이어진다. 작품들은 생명 유기체 특유의 자기 생산체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결 방식은 개방적이다. 연결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그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작가도 모른다. 작품들은 실재적이고도 잠재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하지만, 여기에서의 변화는 주어진 환경에의 적응이라기보다는 동요이자 모험이다. 거기에는 하나로 완결된 존재들이 아니라, 어디선가 비롯된 조각들로 이루어진 조립이 있으며, 그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구조가 구축되어가는 지가 중요하다. 구조는 점점 더 복잡해져 작업실과 전시장은 가득 메워진다. 주어진 환경을 적극 이용하는 증식 방식은 열린 체계를 이룬다.
그것이 체계를 이루면서도 열려있다는 것은 사실과 꾸밈 사이의 경계가 불확실하다는데서 온다. 이러한 열린 체계를 통해 환경과의 에너지 교환이 지속된다. 교환이 단절되면 죽음과도 같은 평형상태에 이를 것이다. 퍼즐 조각처럼 구성된 세계에서 작가와 관객은 유희한다. 김동현은 ‘내가 상상하는 우주는 약간은 철이 없는 어린 신이 에너지라는 퍼즐조각으로 갖가지 형태의 놀이를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고 말한다. 놀이하는 신은 인간사에 무관심한 채 에너지로 유희하며, 그것이 경악으로부터 환희에 이르는 세상의 모든 사건사고를 만들어낸다.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우주의 우스꽝스러운 파동과 법칙에서 피어난 꽃’이라고 결론 내린다. 인류학자들은 놀이의 특징으로 한정된 장(場)과 무목적성을 지적한다. 놀이는 예술처럼 그것이 펼쳐지는 특수한 시공간을 가진다. 놀이의 영역은 닫혀 지고 보호받고 따로 잡아둔 세계, 즉 ‘순수 공간’(카이유와)이며, ‘일정한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 신성하고 분리된 영역’(호이징가)을 말한다. 일상의 세계의 한복판에 있는 일시적인 세계인 놀이에는 규칙이 존재한다.
놀이는 문화와도 같이 일종의 상징적 모델로,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을 따른다. 한정된 시공간 속에서 행해지며 일련의 규칙을 따르는 무목적적인 행동인 놀이는 예술과 유사하다. 신이 놀이를 한다면, 동시에 예술도 하고 있는 것이다. 김동현이 상상하는 신이 놀이하는 신이라면 신은 특히 우연 놀이를 한다. 현대물리학에서, 불확정성의 원리에 내재된 통계학적 성질로 인해, 기성의 과학자들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완강하게 저항한 바 있지만, 김동현의 상징적 우주에서는 주사위 놀이가 행해진다. 카이유와는 [인간과 성]에서 놀이를 네 가지 범주로 구분했다. 그것은 경쟁(Agon), 우연(Alea), 가장(Mimicry), 현기증(Ilinx)인데, 이 네 가지는 상호 조합되거나 교차될 수 있다. 알레아란 라틴어로 주사위 놀이를 의미하는데, 우연성 자체가 놀이의 원동력이 된다. 알레아는 우연적인 운명의 판결에 따르는 것이다. 우연은 혼란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계몽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성이 발견한 필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카이유와는 놀이에서는 현기증의 추구조차도 현실생활의 정상적인 상태인 혼란을 완벽한 상황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김동현의 놀이로서의 예술은 혼돈의 세계에 대응하는 또 다른 혼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신처럼 놀이하는 주체의 입장에 서 봄으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제어한다. 그것은 현실과 연결은 되어 있지만 구별되는 차원에 속하는 허구, 즉 예술의 작동방식을 설명해준다. A.A 멘딜로우는 [시간과 소설]에서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스코트를 인용한다. ‘실제 인생은 상호관계가 없는 많은 장면들로 구성된 우연의 혼합체(chance medley)이다. 인생이란 연극을 쓴 위대한 작가는 그 작품을 완성시켜 놓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는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실제 인생에서는 아무런 결과에도 이르지 못하는 경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 많은 사건이 생겨나고.....인생의 음색이나 야릇한 꼬임 그리고 기이한 불규칙적 리듬을 포착하는 것, 이것을 끈질기게 꾀할 때 소설(fiction)은 자립하게 된다.’ 김동현은 복잡한 구성 요소들을 놀이 원칙에 따라 재배열함으로서, 자연과 예술을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그것은 아무것도 변모시킬 수 없는 무기력한 자의가 아니라, 선택된 규칙을 끝까지 관철시킴으로서 생겨난 자유에 의한 것이다. 그녀의 작품들 속에 내재된, 주사위 놀이를 하는 신의 이미지는 현대과학과 현대예술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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